아름다운동행

항암 멈춘지 1년 된 것 같아요. :)

미니호랭이l대보
2023.06.10 21:39 | 조회 2.7k

안녕하세요?

21년 초에 남편이 대장암4기(결장) 판정을 받은 후, 약물항암과 수술, 술후 항암을 거쳐 현재까지 건강하게 잘 유지중입니다. 오랜만에 안부전해드려요.

작년 1월에 글을 썼으니 벌써 1년반이 지났네요. 아 궁금해하실 거 같아 몇 자 적어보려는데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그만큼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는 거겠지요? :)

대낮에 병원을 나설 때의 얼떨떨함이 아직도 생생해요. 케모를 한창 할 때는 오전에 가서 피뽑아놓고 검사결과 나오는 오후 진료에 선생님 뵙고, 주사실 올라가서 약 맞고, 달고 나오면 캄캄해질 때까지 정말 하루종일 병원에만 있었거든요. 14차 이후에는 약만 달고 나왔었는데, 지금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한 세번정도는 의자에 앉아서 1시간정도 맞다가 오는 게 다였어요. 그러다 언제부턴가는 항암을 멈추고 정기적으로 일주일 전쯤 전에 검사(CT,채혈) 하고 그 다음주경 선생님 뵈면서 정기검진만 해오고 있습니다.

2주가 3주가 되고, 3주가 4주가 되고, 2달이 되고, 3달이 되더니.. 이제 다음 예약은 4개월만에 오래요! 그렇게 항암을 중단한지가 1년이 됐습니다. 일찍 와서 희망소식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사실 중간에 한번씩 좀 지켜보자 하는 때가 있어서 좀 늦어졌습니다. 여전히 정상 범주긴 하지만 암수치가 살짝 유의미한 상행곡선을 타나 싶을 때도 있었고, 복부ct만 찍어왔는데 폐쪽으로 어떤 희끗한 상이 보인다고 (일반인들도 가벼운 염증이 있을 때 생겼다 없어지기도 하지만 우린 암환자니까 확인차) 직전예약에 폐ct도 추가로 찍었거든요. 근데 어제 다행히 전부 정상이라 걱정없다는 답변을 듣고 10월로 예약잡고 온 거랍니다. :)

암이라는게.. 특히 대장암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병원갈 때마다 어쩜 그날부터 다시 항암제를 맞고 와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일부러 머릿속 한켠에 챙겨넣고 집을 나섭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남편이나 저나 암환자가 집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막(?) 살아요. 하하.

많은 분들이 뭔가 특별한 관리법(운동, 식단 등)이 있는지 물어보시는데.. 송구하게도 저희는 너무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4기였지만 항암중에도 딱히 관리한 게 없어요.. 워낙 잘 먹던 사람이라 힘들어도 잘 챙겨 먹었고요, 날 것은 위험하다는데 스시도 워낙 좋아해서 종종 먹었습니다. 저희 남편은 40대 중반이라 일단 어느정도 약을 이길 수 있는 체력이 있었을거구요, 무엇보다 약이 처음부터 잘 들었어요.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가지, 자신있게 ‘잘했다’ 할 수 있는 건 긍정적인 태도였습니다. 병은 벌도, 누구탓도 아니고, 생긴걸 부정한다고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애써 생각했어요. 엎질러진 물은 닦는 수 밖에 없다. 그저 닦았습니다. 큰 기대도, 절망도 하지 않고 그냥 해야지 뭐, 하고 다녔어요. 주치의 선생님 성향도 참 덤덤하셔서 저희도 덕분에 덤덤하게 따라갔고, 매번 결과들이 긍정적이라 더 자세히 물어볼 것도 없었구요. 그래서 특정 수치가 어땠는지 물어보셔도 잘 몰라요.

21년 설날 즈음에 암4기 판정 받고 한창 항암중이던 여름에 길에서 아픈 새끼 고양이를 만났어요. 그날도 병원가느라 부지런히 나가는 길이었는데 한낮에 길가에 널부러진 아기고양이를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가다가 안되겠어서 남편 먼저 보내놓고 돌아와 구조하고 우여곡절끝에 살려내서 지금은 행복한 세식구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했나 모르겠어요. 암환자 남편이랑 돌아가면서 빠듯하게 가게 보면서.. 2개월령 밖에 안된 새끼고양이를 꼬박 일주일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2시간마다 강급하면서 살려냈던 일, 다 살린 줄 알았던 애가 도로 까무라쳐서 들쳐안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간 일, 임보만 하고 보낼까 했던 맘이 미안해 건강해져서 꼭 같이 살자고 부둥껴 안고 울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냈던 나날들.. 다행히 고양이도 한달만엔 거의 회복이 됐고 그 때즘 남편의 수술 얘기를 들었네요.

회복도 하고 있었지만 큰 병을 얻었던 허름한 골목, 낡은 집을 적극적으로 벗어나 새로 이사하고 지금은 정말 이러려고 그랬나 싶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남편은 그간 새 사업을 시작할 정도로 삶에 적극적이고요, 밝고 깨끗한 곳에서 살면서 전에는 하지 못했던 식물들도 제대로 길러보고 있고요, 일과 마치고 돌아오면 반겨주고 안아주는 고양이를 보며 매일 같이 웃어요.

아프기 전엔 함께 가게를 꾸리면서 정말 지독하게도 싸웠는데.. 지금도 하루가 멀다하고 티격태격하고 있기야 하지만 이제는 곰 한마리랑 고양이랑 산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ㅎㅎ 그냥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잖아요. 앞으로도 웃는 날 많이 만들면서 사는데까지 하루하루 살아보려구요. 또 종종 안부전하러 오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모두 웃는 날들이 더 많아지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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