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발인 마치고 정리하고 오늘 어머니 모시고 집에 와있습니다.
제작년 5월 즈음에 아버지가 수술을 하신다고 하더라구요.
무슨 수술이냐고 하니까 피부과에서 뭐가 나서 수술 하신다고만 하시더라구요.
수술 다하시고 나서 알게됐습니다. 악성종양이라는걸.
의사도 자기도 처음보는 암이라고 파제트 암이라고 하더라구요.
수술은 잘됐는데 전이 위험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이카페를 가입하고 온갖 인터넷을 다 뒤져서 파제트암 전문가라는 분을 겨우 예약해서 몇달후 찾아갔습니다.
전이 위험이 있으니 항암은 당장 필요 없어 보이지만 원발암 부위의 방사선 치료를 하는게 나을거 같다고.
방사선과 선생님 만나고 방사선 설계 받는데 아버지는 시골사시다보니 아들한테 피해주시기 싫으셨나봅니다.
20회가 보통인데 10회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대신 세기가 다르다.
아버지는 까짓것 짧게 하고 끝내자 하고 10회를 선택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안될거 같아 병원앞에 에어비앤비로 방을 잡아 드렸습니다.
방사선 첫날 하기 전날. 숙소에서 고기를 구워먹었어요.
아버지께 많이 드시라고 방사선 하면 많이 힘들다고.
아버지는 까짓것 10회하는데 금방 하면 되지 하셨어요.
10회가 끝나갈 무렵 아버지는 무척이나 힘들어 보이셨고 다시는 방사선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구요.
3개월 후에 ct를 찍어보자고 하고 1차전이 끝났습니다.
3개월후 작년 초에 pet ct랑 찍어보니 아무래도 전이가 된거 같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2차전이 시작됐습니다.
방사선 20회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항암이 시작되었습니다.
매번 항암을 하실때마다 아버지는 항암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게다가 원래도 좋지 않으시던 치아가 항암 때문인지 더 안좋아지고 여기 저기 흔들리시니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어요.
10몇차의 항암을 하고 담당 선생은 좋아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치아가 너무 안좋아지시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담당선생에게 임플런트등 치료를 해도 되니 물어보니. 좋아지고 있고 해도 될거 같다고 해서 작년 12월에 이를 몇개 빼시고 임시치아를 하셨어요.
올해 1월 항암을 하시고 늘 하듯 ct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3월 초에 임플런트를 하면 식사도 잘 할수 있으실거라 하셨어요.
1월말쯤 항암을 하러 가서 지난번 찍은 ct를 보고 의사가 말하는데 간에 안좋은 조짐이 보인답니다.
아무래도 조직 검사를 해야 할거 같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실망 하셨어요.
좋아 지고 있다고 했고 항암도 이제 몇번만 하면 당분간 추적 관찰만 하면 된다고 했고 3월 초에 임플런트도 할테니 식사도 좀 편하게 하실수 있으실거라고.
조직검사 날짜가 정해지고 입원 전 주말에 배가 너무 아프셔서 집근처 병원 응급실에 가셨데요.
짜증이 났어요.
내일 조직검사 때문에 입원 하려면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하고 제때 병원도 가야 하는데 배가 아프다고 응급실이라니.
그래도 차를 끌고 몇시간 운전해서 병원에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갔다가. 아무래도 우리집에 모시고 갔다가 검사날 일찍 병원 모시고 가는게 나을거 같아서 집으로 모시고 왔어요.
조직검사 하는날 저는 출근 때문에 여동생 보고 우리집으로 와서 모시고 가라고 했어요.
그렇게 입원을 하신 첫날 1인실 밖에 없다고 아버지는 불만이 많으셨어요. 너무 비싸다고.
저는 3일만 입원하시는건데 제가 알아서 낼테니 돈걱정 하지 마시라거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기어이 다음날 5인실로 옮기셨어요.
그런데 배에 복수가 차셨데요.
배가 아프신 이유가 복수 때문이래요.
그래서 배에 구멍을 뚫어 배약관을 해야 한데요.
아버지는 또 아프시기 싫으시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아버지께 복수를 안빼면 더 힘드실수도 있데요. 좀 아프셔도 참으시라고 했어요.
배액관을 하고 복수를 뺍니다.
다음날 어머니께 전화가 왔어요.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복수를 1리터 빼신다는거에요.
그때 뭔가 느낌이 왔습니다.
매일 복수를 1리터를 뺀다는거면. 그만큼 생긴다는 이야기라는걸.
그날 이후부터는 툭하면 눈물이 나더군요.
담당 의사가 보자고 하더군요.
현재 간에 전이가 많이 되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복수는 안없어질거라고.
그러더니 기존보다 독한 항암제를 쓰던가 비싼 면역 치료제를 써보는게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힘든 항암제는 애초에 재껴두고 면역치료제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돈 제가 가지고 있는돈 동생이 최대한 땡길수 있는돈 하면 그래도 1년은 할수 있겠다 싶었어요.
한 이틀 지나서 담당 선생이 아침 회진시간에 어머니가 전화를 바꿔주셨어요.
황달 증상이 심하다고 여기서 더 치료는 더 고통을 주는거니 호스피스로 옮기는게 낫겠다고. 길어봐야 3개월이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고통을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호스피스를 알아보고 지난주 금요일에 옮겨 드렸어요.
우리 아버지가 3개월 밖에 못사신다니.
하지만 호스피스를 가니 현실은 3개월이 아닌 길어야 1-2주래요.
옮겨드리고 월요일에 퇴근하고 와이프랑 면회를 갔어요.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으실때 아버지를 보는게 나을거 같았어요.
면회를 가니 하루종일 주무신다고 하더라구요. 입을 열고 코를 골고 주무시는걸 보니 마치 평상시 같았어요. 편안해 보이셨어요.
어머니께 아버지 몇달는 더 사시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화요일 점심때 어머니께 전화가 오더니 호스피스 간호과장님께 전화가 왔어요. 면회를 다 풀었으니 올수 있는 분들은 다 면회를 오래요.
그얘기 들으니 진짜 몇일 안남은건가 싶었어요.
3개월 이라더니 1-2주 라더니 갑자기 뭔가 싶었어요.
어머니가 집에 영정사진이 있으니 가져오는게 나을거 같데요.
열심히 달려가서 영정사진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동생한테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거 같다고.
그렇게 아버지는 소풍을 가셨어요.
그래도 제가 마지막 본 아버지는 제가 늘보던 코골고 주무시던 평상시 그 아버지셨어요.
배가 아프다고 하신걸 빨리 알아서 빨리 치료를 해볼수 있었다면.
피부과에서 수술하신다고 하셨을때 좀더 빨리 눈치채고 처음부터 큰병원으로 갔었다면.
아버지가 이가 안좋으시다고 하셨을때 미리 임플런트 해드렸다면
하는 후회들이 몰려와요.
오늘은 지난 몇주보다 오히려 더 슬프거나 힘들지는 않아요.
그런데 문득 아무때나 눈물이 나네요.
정말 아버지 한번만 더 볼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