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재용/조윤선/안종범
내가 재판을 받으러 가는 서울 고등법원은 서울 중앙법원과 지하가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다. 법원 지하에는 재판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공판에 들어가기 전 기다리는 대기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고등법원 재판과 중앙법원 재판 피고인들이 같은 곳에 모인다. 구치소에서 법원까지 차량 운행시간이 한정적이다보니 재판전 미리와서 몇시간을 기다리가 일쑤다.
고등법원으로 향하던 어느날 남부 구치소에서 출발하는 차량에 올라탔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중년의 여성이 창가를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최순실씨였다. 그녀도 나도 재판을 받으러 가는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던 탓에 옆에 사람은 아량곳도 없이 차창문 너머 세상만 처다보고 한시간을 달리는 차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법원에 도착하면 원래 남부구치소 대기실, 서울 구치소 대기실 등이 나뉘어 소속 피고인들이 한방에 같이 머물게 된다. 그런데 그날은 도착하자 마자 교도관이 나를 부른다. "오늘 정유라씨가 입국하고 언론에 나와서 엄마로서 마음이 너무 그래...그래서 대기실 자리를 양보하고 저쪽 의자에서 기다려줄수 있을까? 같은 엄마로서 양해해줄수 있지..?" 내입장에서야 어디서 기다리건 그게 뭐가 대수라고 흥쾌히 그러겠다 했다. 아니다 다를까 최순실씨가 머무는 대기실에서는 계속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대기중 나는 화장실을 가기위해 교도관에게 요청을 했다. 수갑을 찬 피고인이 화장실을 갈때엔 보통 두명 이상의 교도관이 동행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남자 화장실 문앞에 교도관이 빼곡히 서있어서 빠져 나오기가 힘들어 잠시 멈추어 섰다. 낯익은 얼굴이 남자화장실에서 성큼 나온다. 이재용 회장이었다. 지하 대기실 복도에 즐비한 많은 인파속에 교도관은 정복을 입고 재판에 오는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관복을 입어 모두가 일률적인데 그 가운데 이재용회장과 나는 사복차림으로 좁은 화장실 복도에서 마주치니 둘다 흠칫하고 서로를 처다보았다. 죄수복 가운데 민간인복장에 대한 적응안되는 반응이라고나 할까(참고로 재판중인 피고인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수감자에도 재판이 사복을 착용할 수 있다. 물론 재판부에 괜히 튀게 보일까봐 언론에 등장하는 유명인외에는 거의 사복출정을 하지 않는게 관습이다). 이재용회장의 얼굴은 말그대로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재판을 앞두고 내 코가 석자인 주제에도 오지랍이 발동하며 '대범하게 마음을 먹으면 좋을텐데..'하고 감히 이재용회장 걱정을 해주고 있었다. 너나 잘하세요~~
어느날엔 안종범 전 수석과 같은 차를 타고 이동했고 법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통굽걸어오는 소리에 문틈으로 내다보니 조윤선 전 장관이 걸어오고 있었고 TV보다 실물이 훨씬 훤출했던 김종 전 차관을 보기도 했다. 다들 바깥세상에서 내노라하던 시절이 무색하게 수감이 되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그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고 그들을 보니 사람인생 참 별것 아니고 너나 나나 전부 참 인생 똥이다 싶었다. 아침에 같은 차를 타고 법원 출정을 가고 대기실에서 얼굴 맞이했던 유명인사들은 어김없이 그날 저녁 구치소 TV뉴스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들과 함께 호송차량을 타고 갈때면 법원에 도착할때마다 카메라 플래쉬세레에 함께 시달렸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증인이 미쳤다
드디어 대망의 고소인 증인신문 기일이되었다. 나와 변호인이 아무리 전략을 잘 짜본들 그 전략에 고소인이 걸려들지 않으면 헛다리 짚는 결과만 나오는게 재판이다. 이미 1심에서 증인신문을 마친 고소인을 왜 다시 항소심 증인으로 채택해야하냐는 검찰측 반발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증거가 고소인의 진술뿐이기 때문에 반드시 일관성 확인을 해야한다는 우리측 주장이 팽팽이 맞선 가운데 재판부는 고소인 증인신문의 필요성을 인정해주었다.
우리는 이미 준비한대로 프로젝터등 법원장비를 점검하고 그간 고소인이 제출한 서면 자료들을 재판부가 보는 그 자리에서 바로 스크린으로 쏘아올릴 수 있도록 준비했다. 고소인은 변호인측의 질문에 답을 이어나갔고 엄숙한 법정의 공기는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어갔다. 고소인이 이전 진술과 다른 답변을 할때마다 우리는 그가 이미 제출했던 서면 진술서들을 스크린으로 쏘아올리며 "이전에는 이렇게 답변했는데 오늘은 왜 다른 말씀을 하시냐"고 추궁해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술번복이 누적되자 재판부의 표정은 굳어갔고 검찰마저 신문중간에 한숨을 쉬기도 했다. 고소인도 예상치 못한 스크린 화면이 현재 자신의 진술과 계속 상충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감정이 흥분되는 모습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기세를 몰아 우리 변호사는 사건의 주요 쟁점에 관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고소인은 정말로 회사자금이 선물옵션 투자에 할애된다는 사실을 모르셨나요?" 지금까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회사자금이 선물옵션에 유용되었다는 주장을 해오던 고소인은 "미국 본사가 금융투자를 하니까 한국지사도 할수도 있겠지요!" 지치고 짜증난 목소리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상반된 고소인 자백이 나온 부분에서 주심판사가 볼펜을 잡아들고 메모를 한다. 나의 눈동자는 재판부와 고소인과 검찰측의 세 앵글을 정신없이 관찰하기 바빴다. 우리는 결정적인 증거인 조작된 녹취록을 스크린으로 공개하며 재판부에 설명을 이어갔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앞의 녹취록은 고소인이 검찰수사 단계에서 제출한 것이고 뒤의 것은 지난주 고소인이 이 재판부에 제출한 것입니다. 같은 녹취록의 주요 내용부분이 조작된 것을 보실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거짓 자료들을 재판부에 제출해 오던 고소인이 2년 전 검찰에 자신이 조작한 녹취록을 제출한 것을 잊고 해당 녹취록의 다른 부분을 발췌하여 강조하려다 그만 조작되기 전의 녹취 원본부분을 그대로 제출한 것이었다. 우리측에서 무슨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나는 구치소에 가만 있는데 고소인이 스스로 뻘짓을 벌이며 이런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해 준것이니 내가 어찌 이 과정이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겠는가. 4시간 이상 계속되는 신문에서 고소인은 말그대로 멘탈이 붕괴되고 패이스를 잃어갔다. 이런 고소인의 논리를 정리해 주려던 검찰의 반대신문에 고소인은 그저 "네 맞습니다"만 하면 될것을 급기야 자기 편을 들어주기 위해 질문을 유리하게 던져주는 검찰에게까지 "잘 모르겠습니다"하고 기존 진술을 번복하는 장면이 나오자 검찰이 헛움을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나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나는 피고인석에 앉아 마치 유체이탈이 된듯 공중을 붕 떠다니는 것 같은 4차원 공간을 체험하고 있었다.
우리 변호사
나는 어디를 가나 인복이 많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타고난 운이 그러하겠거니와 혹여 그런 인복을 만드는데 나자신이 공여하는 점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모든 인간 관계에 대해 "의인불용 용인불의"의 철학을 감히 말해본다. 호불호가 병적으로 강한 나는 누구를 만나건 우선 호불호를 정해야 하기때문에 그 사람을 열심히 스크린하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나는 아예 인연을 만들지 않는다. 해서 나는 재수없다는 소리를 밥먹듯이 듣고 살았다. 하지만 한번 믿은 사람은 어떤 상황이 와도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나가는 편이다. 변호사도 의사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인연에 대해 한번 사인을 하고 나면 무조건 믿어버린다. 내 입장이나 권한을 내가 주장하지 않아도 그들이 챙길수 있도록 완전히 납작 엎드려버린다. 변호사나 의사에게 내가 불평을 이어가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들면 그들이 가진 지식과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도 없고 그렇기에 그 역할을 내가 십분 활용할 수도 없게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항소심치고는 꽤 오랜 기간인 6회 공판이 진행되었고 고소인 증인신문을 끝으로 재판부는 다음 공판을 결심공판일로 정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결심공판은 검사가 구형과 피고인이 최후 진술로 마무리되며 그 다음 기일에 판결을 듣게 되는 사실상 절차적 단계에 불과하다. 재판부의 결심공판 공고가 끝나기 무섭게 우리 변호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재판장님. 한번 더 변론할 수 있는 기일을 주십시오. 아직 할 말이 더 남았습니다" 항소심은 원심에서 이미 판결된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변론기일을 중복되게 많이 줄수가 없다. 사건이 많은 서울 고등법원의 스케줄로는 더욱 그러했다. 아니나 다를까 재판부는 더이상 변론기일을 주지 않고 결심공판을 들어가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변호사는 지지않고 항변했다. "재판장님. 제발 짧은 시간이라도 좋으니 한번만 변론기일을 더 주십시오. 정말 피고인이 너무 억울합니다" 울음을 터뜨린 변호사. 재판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재판장은 "흠..음...도대체 무슨 할말이 있기에....그렇게 꼭 할말이 있다면 다음 기일에 한시간 내에 변론하세요" 라며 변론을 허락해 주었다. 사실 나도 돌발적 상황에 당황했을뿐 아니라 울음을 터뜨리는 변호사옆에서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날 재판을 마치고 변호인석에서 내려오는데 검사가 우리 변호사에게 다가와서 "1심때부터 이 재판을 맡으셨나보죠?"하고 말을 걸었다한다. "아니요."하고 변호사가 답하니 "그럼 원래 지인이십니까?"하고 묻더라는거다. 그도그럴것이 요즘같은 세상에 어떤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재판부에 읍소해줄 수 있겠는가? 당연한 일이 대단한 일로 평가받는 점은 씁쓸했지만 평소 기계적이고 건조하기 짝이없는 우리 변호사가 법정에서 눈물까지 흘리게 된 의아한 장면에서 나는 또 하나님의 개입을 직감했다. 그 후 변호인 접견을 와서 대뜸 "내가 미쳤나봐. 왜 그날 재판부앞에서 눈물까지 흘리고 이런 일은 진짜 처음이네요"하는 내 변호사의 말에 미소로 화답하며 나는 마음으로 확답했다. '그러게요...하나님 작업능력이 이정도네요...'
결심공판과 선고사이
드디어 결심공판일이 되었다. 피고인석에 앉자마자 재판장은 내게 얼굴을 돌려 물으셨다. "피고인,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얼굴이 많이 야위었네요" 나는 "괜찮습니다"하고 짧게 대답을 올렸다. 구치소에서 운동을 많이해서 살이 빠졌다는 긴 설명은 굳이 하지않았다. "오늘 결심 공판 마치고 2주후 선고하겠습니다"재판장의 말에 이번에는 검사가 손을 들었다. "재판장님, 공소장이 변경된 부분도 있고 고소인측에서 반박할 시간이 필요한데 선고를 조금 뒤로 미루어 주십시오" 검사의 요청에 주심판사가 마이크를 앞으로 잡아당기며 침착하게 이야기한다. "선고 미루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공판중에도 같은 말만 반복되고 있어요" 누가 봐도 불편한 내색이 보이자 재판장께서 불을 끄려는듯 마이크를 다시 잡으며 "법원 스케줄도 그렇고 선고 연기는 무리가 있으니 이해해 주십시오"하고 검사에게 양해를 구하자 검사도 더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유죄를 주고 싶어 환장한 놈...'검사를 처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구시렁 거려졌다.
이제 선고가 2주일 후다. 나는 지난 6개월간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40년을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했던 하나님의 실존을 만나고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고 그 가운데 듣게 된 하나님의 응답은 나로 하여금 아이러니한 마음가짐을 갖게 만들었다. 검찰조사부터 회사가 검찰 지검장 출신의 변호사까지 고용해도 꼬이기만 하던 사건은 하나님의 개입이 시작된 후 고소인이 스스로 번복과 자백을 이어가며 내 재판의 일등공신이 되어주었다. 이쯤되면 이제 나는 무죄겠구나하는 들뜬 마음이 들만도 한데 오히려 모든것을 내려놓게 되는 내 담대함, 이제 모든것을 밝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죄건 무죄건을 판단하는건 재판부의 선택이고 하나님의 결정이며 그 결론이 어떠하건 나는 내 할일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짧은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성경구절을 마지막에 덧붙이게 되는데 변호사는 한사코 재판부에 종교적 색체를 드러내지 말것이며 기독교에 반감을 가진 판사들도 많아서 오히려 독이 될수 있다고 말렸으나 이미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들어선 당시에 나에게 재판부가 선입견을 갖건말건 그런 우려는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죄를 짓지 않아도 잡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감옥이고 이것이 사법시스템의 한계이며 이것이 우리 인간이 만든 세상인데 내가 발버둥친다고 내 뜻대로 되는것이 아니라는 진실앞에 난생처음 진심으로 나를 내려놓는 겸손 비슷한 자세도 가져보았다. 오직 하나님께 모든것을 믿고 맡기겠다는 확고함으로 성경구절을 담은 내 마지막 탄원서는 재판부로 보내졌다. 교정국에서 파는 편지지에 손으로 적은 내 탄원서의 원본파일을 보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