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거리의 부랑자 신장암 4기 수기 2편

허당룸펜
2019.03.28 17:16 | 조회 837

거리의 부랑자 신장암 4기 수기 2



의식이 돌아오자 무자비한 통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중환자실 간호사가 내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 왜, 인상을 쓰고 있어요?


퉁명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난 응답하지 않았다.


살아난 것 만해도 감사했고 무료로 수술을 받은 것만으로 감사했기에 아프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고통을 참으려다보니 인상을 쓰고 있었던 게다.


자꾸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난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눈물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며칠 후,


일반실로 올라오자, 다른 분들이 반겨주었다.


, 이런 세상도 있구나!


의료원에서 행려환자로 신장암 수술까지 받은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는 귀띔을 들었다.


그리고 난 살아 있었다.


......


복강경과 개복을 동시에 한 수술이었다.


배에 구멍이 3개 있었고, 동그란 피주머니가 달려 있었고, 명치끝에서부터 배꼽아래까지 기다란 칼자국이 나 있었고, 꿰맨자리에 철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남자간호조무사와 간호사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 저 사람 노숙자래요. 생긴 건 전혀 아닌 거 같은데... 주제에 채식주의자라나 뭐라나... ㅋㅋㅋ


, 괜찮았다.


목숨까지 살려 주었는데, 그 정도야 아무려면 어떤가 싶었다.


하여튼, 난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꾹꾹 참고 있었다.



......


병실에는 5명이 있었다.


93, 81, 74, 51, 그리고 나였다.


모두들 심각한 상태였다.


끝없는 신음소리... 울음소리...


내 앞의 81세 노인은 대장암 말기였고, 대장 전체를 제거한 상태로 버티고 있었다.


그 분은 밤마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가끔씩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곤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면회를 왔다.


병실은 매일 북적거렸고 정신없을 정도로 시끌벅적했다.


환자들 중에 내 짐이 가장 단출했다.


배낭 1


노숙자들이 흔히 끌고 다니는 바퀴달린 가방 1


입고 온 옷 1


현금 4400


10000원 가량이 충전된 선불폰


이게 내 전 재산이었다.


내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다정하게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분을 본 적 없었다.


아버지가 그리웠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그 분의 손을 잡고 그 분의 눈망울을 바라보았다.


그 분에게는 5명의 딸과 사위가 있었다.


그들은 끝없이 오가며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


둘째 딸이 내게 물었다.


- 왜 아무도 안 와요?


- , 그냥 혼자에요.


- 이거 마셔 볼래요?


- 아뇨, 그저 마음으로나마 감사히 받겠습니다.


정말 가슴 벅찬 가족들이었다.


둘째 사위는 매일 같이 와서 장인의 온몸을 직접 주물렀고, 씻겨드렸다.


감동적이었다!


14일 수술 한 뒤로, 한 달이 지나고 있었고, 구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 정말 살만했다.


세상을 떠날 사람들과 그들을 찾아와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꽤 멋있는 거야!”라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난 그냥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정말 좋았다.



......


그리고 어느 날, 퇴원해야한다는 명을 받았다.


행려환자로 더 이상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지원금을 다 소비했으니까 이제부터 알아서해야한다고 했다.


주치의로부터 4기 판정을 받았고, 수술을 했어도 99% 전이암으로 항암도 해야 될 거라는 말을 듣고 난 후였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 것인가, 잠을 잘 수 없었다.


퇴원하면 약은 비급여로 알아서 사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 후에 외래로 와서 한번 보고, 계속 외래로 올 때마다 병원비를 내야한다고도 했다.


그건 그렇고, 어디로 가야할까, 나는 고민에 쌓여 있었다.


밤잠을 자지 못하고 아침이 되자, 그 분의 둘째 사위가 또 왔다갔다.


듣는 바로는 영종도가 개발되면서 땅 부자가 된 노인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자, 그 분이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 어딜 가도 차비는 있어야지.


둘째 딸이 내 침대로 와서 봉투를 손에 쥐어 주었다.


- 어쩌죠, 10만원 뿐이 안되는데... 나갈 때 택시라도 타고 가세요.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 어머, 울 줄도 아시네요. 아직 건강하시니까 이겨낼 거예요.


평생, 처음 만져보는 5만 원짜리 신사임당이었다.


, , 이렇게 살아온 걸까.


이제 어디로 갈까.




3부에서 계속......







Naver
목록으로

댓글

1
로그인 하고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