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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난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절이라도 그 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높은길로 가기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길만 비추기 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난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절이라도 그 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좁은길로 가기 원하네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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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사도의 죽음을 묵상하면서
“고통 없이 영광 없고 죽음 없이 부활 없다”(떼이야르 드 샤르뎅).
이 말은 지상여정(地上旅程)을 순례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실한 삶을 살고있는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힘있는 위안이고 격려일 것입니다.
“고통 없이 영광 없고 죽음 없이 부활 없다”(떼이야르 드 샤르뎅).
이 말은 지상여정(地上旅程)을 순례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실한 삶을 살고있는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힘있는 위안이고 격려일 것입니다.
‘참된 크리스천 생활’이란 한마디로 ‘고통에서 영광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가는 삶이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내다보며 은총의 때 사순절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가장 강력하고 교훈적이며 경고적인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가복음 16:24-2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죽기까지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외면적 심리적 추종뿐만 아니라 그 부르심에 대한 인간적인 결의와 행동적인 응답이 요구됩니다. 즉 주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보리산을 오르실 때처럼, 또한 당신의 전 생애를 통해 행하신 것처럼 온전히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철두철미 추종하고 온전히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 살며 그 가르침을 온 세상에 전파한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 사도들입니다. 지금 사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열두 사도들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하며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자기 잘못에 대해 얼마나 통절하게 눈물을 흘리며 통회를 했던지 눈밑에 눈물 구멍이 생겼다고 합니다. 로마에서 선교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에서 선교하다가 아카이아 파트라스에서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안드레가 매달린 십자가는 X자형이었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예수님 측근 삼인방의 한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모교회를 지키다가 헤로데 아그리파 왕의 칼에 목이 베였습니다. 열두 사도 가운데 첫 순교자이며, 다른 야고보와 대비하여 장 야고보라고도 불립니다. 요한은 70년경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나서, 에베소에 가서 선교했습니다. 거기서 박해를 만나 기름가마에 던져졌지만 기적적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박해하는 이들이 놀라 밧모 섬에 귀향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묵시(계시)를 받아 묵시록을 쓴 후 자기 명대로 살다가 죽은 유일한 제자입니다.
빌립보는 소아시아 부르기아 지방에 가서 선교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돌로베는 아르메니아 지방에 가서 선교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의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믿었던 의심 많은 제자였지만 파르티아, 인도 등지에서 선교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마태는 세리 출신으로 제1복음 성경의 저자이며, 이디오피아에 가서 선교하다가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아래로 떠밀려 죽었습니다. 열혈당원 시몬은 이집트에 가서 선교하고 유다에 돌아와서 선교하다가 화살의 과녁이 되어 죽었습니다.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페르시아에 가서 선교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철두철미 추종하고 온전히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 살며 그 가르침을 온 세상에 전파한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 사도들입니다. 지금 사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열두 사도들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하며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자기 잘못에 대해 얼마나 통절하게 눈물을 흘리며 통회를 했던지 눈밑에 눈물 구멍이 생겼다고 합니다. 로마에서 선교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에서 선교하다가 아카이아 파트라스에서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안드레가 매달린 십자가는 X자형이었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예수님 측근 삼인방의 한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모교회를 지키다가 헤로데 아그리파 왕의 칼에 목이 베였습니다. 열두 사도 가운데 첫 순교자이며, 다른 야고보와 대비하여 장 야고보라고도 불립니다. 요한은 70년경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나서, 에베소에 가서 선교했습니다. 거기서 박해를 만나 기름가마에 던져졌지만 기적적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박해하는 이들이 놀라 밧모 섬에 귀향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묵시(계시)를 받아 묵시록을 쓴 후 자기 명대로 살다가 죽은 유일한 제자입니다.
빌립보는 소아시아 부르기아 지방에 가서 선교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돌로베는 아르메니아 지방에 가서 선교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의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믿었던 의심 많은 제자였지만 파르티아, 인도 등지에서 선교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마태는 세리 출신으로 제1복음 성경의 저자이며, 이디오피아에 가서 선교하다가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아래로 떠밀려 죽었습니다. 열혈당원 시몬은 이집트에 가서 선교하고 유다에 돌아와서 선교하다가 화살의 과녁이 되어 죽었습니다.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페르시아에 가서 선교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우리들은 암이라는 고난을 만나, 때로는 예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합니다. 고통 가운데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주님과 뜨겁게 교제하던 분의 소천 소식에 믿음이 크게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영생과 부귀영화 보다 천국소망을 가진 우리들은 주님의 사도들처럼 참으로 죽기까지 우리의 신앙을 온전히 지키며 키워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어려운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 역시 예수님의 열두 사도처럼 죽기까지 주님의 도구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종교가 기독교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복을 누리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주님 뜻 안에 있음을 기뻐하는 것이 성도의 길입니다.
찬양 드리겠습니다.
소원
삶의 작은일에도 그 맘을 알기를 원하네
그길 그 좁은길로 가길 원해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길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길만 비추기 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그길 그 좁은길로 가길 원해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길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길만 비추기 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난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절이라도 그 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높은길로 가기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길만 비추기 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난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절이라도 그 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좁은길로 가기 원하네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그 높은 길로 가기 원하네
매주 주일마다 올려주시던 지평님의 성경읽기가 67회를 끝으로 멈춰서게 되었습니다.
지평님께서 2017년 3월 17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셨습니다. 정말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주님품에서 안식하실 지평님을 가슴 깊이 애도하고 추모하며, 마지막까지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온 힘을 다하신 제자의 삶을 귀감으로 삼고자 합니다.
'소원'이라는 찬양은 지평님의 통화연결음으로 설정되어 있는 곡입니다. 함께 들으며 추모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주님품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